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 훨씬 전, 퐁냐 동굴이 과거 참파 왕국의 중요한 신앙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2세기부터 11세기 무렵, 오늘날의 꽝빈 지역은 여러 참파 소국들이 교류하던 중심지였으며, 특히 인드라푸라 왕조(9~10세기) 시기에 크게 번영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동굴 내부에 가치 있는 문화적 흔적들이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퐁냐 동굴에서 발견된 참파 유적은 주로 9세기부터 11세기 초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899년 프랑스의 신부이자 학자인 레오폴 카디에르(Léopold Cadière)가 학술 조사를 통해 이 유적들을 최초로 기록했습니다. 그는 벽돌 제단, 석상, 도자기 파편과 더불어 퐁냐 동굴 안쪽에 자리한 비끼 동굴(Hang Bi Ký) 암벽에 새겨진 97개의 고대 문자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2015년 프랑스 극동학원(EFEO)의 아를로 그리피스(Arlo Griffiths) 교수의 연구를 통해 이 비문들이 11세기 초(1000~1020년경)에 새겨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비문에는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참 문자가 사용되었으며, 힌두교와 대승불교 간의 문화적 융합을 반영함과 동시에 당시 참파인들의 뛰어난 문화적, 종교적 수준을 잘 보여줍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비끼 동굴이 제단과 신상을 모시고 종교 의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참파 성소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석회암 산세 한가운데 위치한 천연 동굴을 예배 장소로 택한 것은 참파인 고유의 신앙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꽝빈의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응력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이러한 유적들은 침묵 속에서 역사의 산증인으로 남아 있으며, 퐁냐 동굴이 단순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넘어 베트남 중부 참파 문명의 각별한 문화적, 고고학적 가치를 품은 공간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