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히에우 사찰이 “환관의 절”로 불리게 된 이유는 응우옌 왕조 환관들의 사찰 건립 및 후원에 대한 지대한 공헌에서 기인합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티에우찌 황제와 뜨득 황제 치세 당시, 궁궐을 섬기기 위해 거세되었던 환관들은 절을 중창하고 확장하기 위해 재물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기부했습니다. 처자식도 없고 대를 이을 피붙이도 없이 고독한 생을 살아가던 그들에게 사찰은 재정적 지원 대상을 넘어 만년의 영혼을 기댈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했을 당시, 이 특별한 인연을 포착하여 이 절을 "Pagode des Eunuques"(환관의 절)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1893년 타인타이 황제 시절, Nguyen Van Tuong 환관이 모금을 주도하여 동료들을 위한 전용 묘역을 조성하면서 사찰은 이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명칭은 널리 전해져 내려오며, 봉건 사회가 낳은 비운의 인물들의 비극을 간직한 뜨히에우 사찰만의 독보적인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