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린 주민들은 어떤 재료로 빈목 땅굴을 건설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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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찌

빈목 터널

Sovaba.travel

업데이트: 26/09/2026

1. 빈목 땅굴

건축 재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Sovaba Travel과 함께 빈목 땅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1965년부터 1967년까지 꽝찌성 빈린현 빈탁사에 건설된 빈목 땅굴은 지하 8~23m 깊이에 3층 아치형 구조로 이루어진 총연장 1,700m 이상의 지하 갱도 시스템입니다. 이 시설은 미 공군과 포병의 맹렬한 폭격으로부터 주민과 군대를 보호하고, 일상생활과 전투를 영위하며 꼰꼬섬으로 식량과 무기를 보급하는 중계지 역할을 하도록 구축되었습니다.

전쟁이라는 혹독한 상황 속에서 자원이 한정되고 물자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빈린 주민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원시적인 도구를 활용하여 이 기적과도 같은 독창적인 군사 건축물을 완성해 냈습니다.

2. 빈목 땅굴 건설의 주요 재료

빈목 땅굴 시스템은 주로 자연 토석과 주변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단순한 재료들로 지어졌습니다. 사용된 주요 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붉은 현무암토 

빈목 땅굴은 끄어뚱 해변 근처의 붉은 현무암토 언덕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토양은 단단하고 점착력이 우수하며 지반 침하가 적어 터널을 굴착하고 견고한 구조를 유지하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빈린 주민들은 현무암토의 지질학적 특성을 활용해 아치형 터널을 굴착함으로써 폭탄의 충격 속에서도 높은 견고성을 확보했습니다. 약 6,000 m³에 달하는 현무암 토석을 파내어 밖으로 운반했으며, 적에게 발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바다로 실어 날랐습니다.

땅굴 건설에 적합한 단단함을 지닌 지형
사진: 땅굴 건설에 적합한 단단함을 지닌 지형 

목재와 가옥 기둥 

갱도의 붕괴를 막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주민들은 나무 기둥을 세워 구조를 보강했습니다. 각 갱도 입구는 인근 숲에서 채취한 목재나 민가의 기둥으로 지탱하였으며, 원활한 환기를 위해 바람 방향에 맞춰 세심하게 배치했습니다. 이러한 목재 기둥은 구조적 안정성을 더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위장을 가능하게 해 적군이 출입구를 찾아내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대나무와 참대 

조명과 현대식 장비가 전무했던 환경에서 대나무와 참대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재료였습니다. 등유가 매우 귀하던 시절, 빈목 주민들은 터널을 파내는 동안 마른 대나무와 참대를 쪼개 횃불을 만들어 조명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대나무는 형태를 잡는 지지대 틀을 제작하거나 땅굴 내부의 각종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도 폭넓게 활용되었습니다. 나아가 대나무 뿌리는 토양을 단단하게 붙잡아 침식과 산사태를 막아줌으로써 땅굴 구조를 온전히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생활용품들
사진: 대나무로 만든 생활용품들

폭탄 파편과 탄피 

빈목 땅굴 건설 과정에서 가장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적군의 폭탄 파편과 탄피를 굴착 도구로 재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곡괭이와 삽이 턱없이 부족했던 열악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이 금속 파편들을 수거해 땅을 파내는 데 사용하며 놀라운 창의성과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이는 한정된 자원을 절약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적의 살상 무기를 항전의 도구로 탈바꿈시킨 불굴의 저항 의지를 상징합니다.

물과 줄 

현대식 측량 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빈린 주민들은 기발한 수작업 측정 방식을 고안해 냈습니다. 병에 물을 채워 수평을 재는 측량기로 삼았고, 돌을 매단 끈으로 다림줄을 만들어 깊이를 정확히 측정했습니다.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정밀한 지혜 덕분에 복잡한 터널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성할 수 있었으며, 2~3°의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여 배수가 원활하도록 설계함으로써 땅굴 내부의 침수를 완벽히 방지했습니다.

3. 빈목 땅굴의 건설 과정

빈목 땅굴의 건설 과정은 약 2년(1965~1967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약 18,000인공의 노동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치열한 전란 속에서 불빛과 전문 장비마저 부족한 채 전적으로 사람의 손과 노동력에만 의존해 완공된 대역사였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였지만 비범한 의지와 뛰어난 창의력을 지녔던 Le Xuan Vy 선생의 지휘 아래, 빈린 주민들은 무장 공안 병력과 긴밀히 협력하여 땅굴을 파내려갔습니다.

굴착 방식: 땅굴은 아치형으로 굴착되었으며, 780m 길이의 메인 통로를 중심으로 수많은 갱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공간이 매우 협소했기 때문에 한 작업조는 통상 2~3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파낸 토석은 외발수레로 실어 날라 바다로 흘려보내거나 폭탄 구덩이에 채워 넣어 적의 공중 정찰을 교묘히 피했습니다.

역경 속의 창의성: 작업자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Le Xuan Vy 선생은 굴착 경연 대회를 열어 하루 3m를 파낸 이에게는 ‘달인’, 하루 4m를 파낸 이에게는 ‘명인’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이는 굴착 작업의 효율을 극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상존하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주민들에게 든든한 동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땅굴의 출구들
사진: 땅굴의 출구들 

4. 소박한 재료 사용이 지닌 의의

현무암토, 목재, 대나무, 심지어 폭탄 파편과 탄피와 같은 원시적인 재료를 활용한 것은 빈린 주민들의 뛰어난 지혜뿐만 아니라 불굴의 정신과 독창성을 그대로 대변합니다. 모든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민들은 버려진 잔해마저 유용한 도구로 탈바꿈시키며 '지하의 고성(古城)'이라 불리는 위대한 건축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빈목 땅굴은 단순한 폭격 대피소를 넘어 우물, 조산소, 집회실, 군수 보급 창고 등을 완벽히 갖춘 온전한 지하 생활공간이었습니다. 특히 땅굴 내부에서 17명의 새 생명이 안전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곳 사람들의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을 여실히 증명합니다.

현재 빈목 땅굴은 베트남의 특별국가유적으로 지정되어 매년 국내외 수천 명의 여행객이 찾고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경이로운 건축적 성취를 마주할 뿐만 아니라, 빈린 군민들의 처절했던 고난과 꺾이지 않는 민족의 의지를 가슴 깊이 체감하게 됩니다. 유적지 내부에는 땅굴의 건설 과정과 지하 생활상을 생생하게 담아낸 기록 영화 '전설의 빈목'을 상영하는 다큐멘터리관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폭탄 외피와 다양한 전쟁 유물을 전시한 공간은 당시의 참혹했던 역사를 더욱 선명하게 전해줍니다. 

땅굴 관련 기록물 전시
사진: 땅굴 관련 기록물 전시 

빈목 땅굴은 단순한 방어용 요새를 넘어, 잔혹했던 전란의 시기를 굳건히 헤쳐 나간 빈린 주민들의 불굴의 투지와 빛나는 지혜를 보여주는 살아 숨 쉬는 상징입니다. 이 경이로운 시설의 위대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갱도 곳곳에 새겨진 감동적인 역사에 귀 기울이고 싶으시다면 꼭 한 번 이곳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Sovaba Travel은 알찬 일정과 깊이 있는 전문 해설 가이드, 정성 어린 서비스로 구성된 빈목 땅굴 탐방 투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가장 빛나는 역사적 한 페이지를 간직한 특별한 유적지를 직접 경험해 볼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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